메타후조와 후조(메타후조 에서는 '후죠시'가 아닌 '후조시'라고 썼으나, 여기서는 腐女子(ふじょし)발음에 가까운 '후죠시'로 표기했다.)의 세계를 히에로니무스 보슈(1450-1516) 의 작품 <세속적인 쾌락의 정원>(1503-04) 삼면 제단화를 레퍼런스로 삼았다. “즐거움은 유리처럼 깨지기 쉽다”-는 플랑드르의 속담처럼, 후죠시의 즐거움 즉 BL(야오이)은 위태로운 레이어들의 위아래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한다.
후죠시의 망상은 주로 “1차”라고 부르는 원작작품의 남성(혹은 남성의 신체형상을 한) 캐릭터를 소재로 삼아, 여러 겹의 재해석과 재구축을 통해 원작과는 다른 남-남커플의 로맨스 혹은 섹스를 그리는 것을 주로 한다. 많은 한국의 후죠시들은 여성인 자신이 남성의 신체를 입고 또다른 남성을 성적대상으로 표현하고 느끼는 문화에 대해 큰 고찰이 없으며, 후죠문화가 만든 수많은 왜곡의 레이어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것은 동아시아 여성의 성적터부와 음지문화 즉 서브컬처가 갖는 포르노적 요소에 대해 쉬쉬하려는 내면에서 비롯되기도 하였다. 본디 후죠시의 세계는 납작하다. 모에-캐릭터 놀이와 같이 어떤 캐릭터나 상황을 연구한 뒤, 그들의 일부 속성만을 극대화 시키고 설정과 세계관 사이사이의 빈 공백을 “좆이 서는” “섹쓰한” “케미터지는” 망상의 연성으로 채운다.
히에로니무스 보슈의 삼면화를 보면, EDEN-EARTH-HELL 로 구성되어있다. 에덴에서는 원죄 이전의 세계, 순수한 이상향을 드러낸다. 후죠시에게 순수한 이상향, 즉 죄에 물들기 이전의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그것은 원작/원전/실존인물 들의 1차적인 매력에 빠진 순간이 아닐까. 성적대상화가 없는 양지의 질서가 지배하는 곳이다. ㅇㅇ너무 귀엽다 ㅇㅇ멋지다 ㅇㅇ우는거 보고싶다 ㅇㅇ케이크 먹는거 보고싶다 ㅇㅇ랑 ㅇㅇ친한거 보기좋다 같은 유아적 희망사항이 있는 세계.
그렇다면 후죠시의 지상, 에덴에서 추방 된 후의 세계는 어떤 곳일까. 후죠시들은 처음엔 못미더워하는 태도로 혹은 자신을 책망하며 혹은 적극적으로 지상으로 몸을 던진다. 구름 위를 걷는 것 같았던 모호하고 부드러운 세계는 사라지고, 자극과 쾌락이 존재하는 지상으로의 추락이다. 즉 “최애캐 섹쓰!” 의 세계라고 볼 수 있다. 원작과는 크게 관련없는 동인설정이 난무하고, 메이져와 마이너가 나뉘고, 캐해석의 갈래가 갈리는 곳이다. 후죠시들은 BL의 세계에서 아주 게걸스럽게- 모든 것을 먹어치운다 그들이 지나간 곳에는 헤테로캐릭터는 없이 모두 게이가 되며, 현실의 게이에 대한 이해를 끌어오거나 혹은 BL적 사고로 해석한 게이 캐릭터가 흥하곤 한다. 처음 지상에 발을 내린 후죠시들은 두리번 거리며 여기저기서 벌어지는 최애 섹스 연성에 흥분하고 주체 할 수 없는 몰입에 빠져든다. 존잘님의 연성은 너무 대박적이고 최애섹스를 키워드 검색만으로 픽시브/구글/카페/트위터 등에서 볼 수 있으며, 심지어 커미션이라는 저가의 창작의뢰를 통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들의 가장 보고싶은 연성을 사서 볼 수도 있다. 그야말로 신세계인 것이다. 입에 닿는 모든 과일이 꿀처럼 달고 보이는 풍경들은 하나같이 아름답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 아주 짧은 순간의 즐거움 이었고 곧 크고 작은 것들이 다가와 나의 후죠시 생활을 위협한다. 미처 알지 못하는 동인계 내부의 윤리, 암묵적 룰 등을 강요하는 후죠시들이 분노에 가득차 여기저기 재단하며, 온갖 “병크” 라는 명칭을 뒤집어 쓴 범죄 혹은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 이미지로 보존되어 랜선구천을 떠돈다. 취좆은 갑작스러운 알레르기반응에 가까우며, 리버스를 보면 거품을 물고 쓰러지는 사람들을 보게된다. 저격은 매일처럼 벌어지고, 트레이싱과 도용에 대한 이야기는 시작도 끝도 모른채 돌기만 한다. 후죠시의 지상이란 그런 형태를 가지고 있다. 수많은 최애섹스와 존잘니뮤와 병크러와 암묵적 윤리로 가득하다.
마지막으로 후죠시의 지옥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은 후죠시들이 영원한 고통을 받는 세계이다. 인권의식과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 그리고 포르노와 창작물의 판매에 대한 생각을 시작한 사람들이 결과적으로 가게되는 곳이다. 최애 섹스!를 외치다가도 자신이 더러운 것을 보며 딸치고 있다는 것에서 오는 현타와 함께 아니야 이것은 포른이다 나는 괜찮다 소비할수 있다 라고 하다가도 수많은 지상의 후죠시들이 발을 구르며 쿵쿵대는 소리에 잠못드는 지옥이다. 탐식의 죄로 인해 영원히 고통받는 메타-후죠들이 오늘도 연성을 진심으로 빨지 못하고 있는 세계. 자신이 핥고 빨고 먹고 자위하던 모든 것에 배설물과 오물이 섞여있었다는 것을 알고 놀라 울거나, 하하 하고 웃으며 외면해보려하거나, 어떻게든 선을 지켜보려하거나, 후좆이 죽어버리는 후죠시의 지옥에서 오늘도 메타후조는 항문속에서 최애를 빨아본다.
꼴림과 피씨사이의 저항과 갈등. 후죠시의 지옥 이후에는 어떤 풍경이 있는지 나는 아직 알지 못한다.
(*위 글은 2016년 작성된 스테이트먼트로 오래된 글입니다.)
작업을 하기에 앞서, 후죠시들이 반응한 작품과 대표적인 커플링에 대한 자료를 모으기 위해 구글폼을 간단하게 만들었다. 트위터 개인계정에 올려두고 십수분이 지나지 않아서 점점 추가-수정-편집자가 몰려들었다. 실시간으로 색색의 텍스트가 쓰여지고 옮겨지는 것은 놀랍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아이돌장르에서는 커플링 싸움이 심해 일부 커플링이 꾸준히 지워지는 것이 목격되기도 하였고(엑소 동방신기 등), 마이너커플링은 지워지기도 했다. 자신의 장르를 영업한다는 느낌으로, 해당장르 커플링을 파는 사람이 거의 없는 장르들도 경쟁적으로 쓰여졌다.
현재는 수정 및 추가가 불가능하며, 아래의 구글 스프레드 시트에서 종료된 버전이 확인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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