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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K-pop

아이돌팬의 도덕관, 장진의 남팬 만화




"너나 범죄 마약 도박 공개연애 하지마!!! 그거 빼고 다 품어줄테니까"

"파맥공방.. 공중파 첫방은 가야지.."

"이래서 남팬이랑 겸상 안한다고요....씨발"

"그야말로 기상천외한 팬질이다. 내가 하다하다 소속사 대표 멘탈까지 걱정해야 하냐."

"좆듣보그룹 슈퍼스페셜 규연(22)"


위 대사들은 모두 2017~18년의 화제작 중 하나인 「남팬만화」에 나오는 대사들이다. 익숙한 단어들이 보인다면 당신도 진성빠순이가 아닐까!






남팬만화?


「남팬만화」는 포스타입 기반으로 자유 연재 되고 있는 웹툰으로, (링크 https://tkdgkdltmvkdltm.postype.com) 「남팬만화」의 메인 스토리는 고등 동창인 이한마(미라클붐붐)와 김영수(파라맥스의 남팬이자 홈마) 그리고 김용철(김영수가 덕질하는 그룹 파라맥스의 리더)의 삼각관계가 주를 이룬다. 작가 장진은 돌판에서 가장 유효하고 또 역사가 깊은 BL-RPS 문법을 이용하여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러한 시도는 아이돌 팬의 스킨을 '남성'으로 덧입혀 감상자의 대부분인 여자 팬들의 아이돌 연애에 대한 거부감을 제거하는 동시에, RPS를 즐기는 팬들에게 익숙한 정통 BL 문법을 가져와 특별한 설명이나 효과 없이도 감상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무엇보다도 작가는 아이돌 팬덤들의 생태와 구조를 깊이 이해하고 있어 아이돌 팬덤을 묘사하는 디테일에서 예리한 관찰력과 표현력을 보여주고 있다.



장진?


장진은 2014년 「딸기와 밀크티」 라는 작품으로 데뷔해 꾸준히 활동 중인 웹툰/스토리작가이다. 전작 남팬인데요? 에서 https://www.pikicast.com/#!/menu=series&series_id=256162 팀_해장 이라는 이름으로 스토리 파트를 맡았다. 현재는 피키툰에서 작품이 모두 내려진 상태다. 장진 작가의 이력은 독특하다. 하나의 팬덤 혹은 아이돌 덕질에 머무르지 않고 아이돌 팬덤 전반에 관해 꾸준히 그려내고 있다. 아이돌 팬의 생태를 그린 빠순이툰(네이버 베스트도전 웹툰과 블로그 연재)과 결코 짧지 않은 팬아터 활동 이력이 특징이며, 계속해서 남팬인데요?」와 「남팬만화」로 아이돌 팬덤을 지속적으로 다루고 있다.



아이돌팬의 비현실적 도덕관


「남팬만화」 19화에 등장하는 남팬과 남돌이 대화하는 씬에서, 남팬은 "너나 범죄 마약 도박 공개연애 하지마!!! 그거 빼고 다 품어줄테니까"라고 말하는데, 이 발언은 전형적인 아이돌 팬의 사고를 대변한다. 음주운전이나 폭행 등의 범법행위와 아이돌의 자유연애를 같은 레벨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품어준다"는 표현은 실제로 팬덤에서 자주 보이는 표현으로, 아이돌 팬들이 스스로의 위치를 아이돌을 품어줄 수 있는 연인의 위치로 잡고 있다는 것을 내포한다. 아이돌의 연애는 팬인 자신의 위치를 유지할 수 없게 만드는 중대 사건이며, 그렇기에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이다.


또한 이 장면을 굳이 여팬이 아닌 남팬의 입을 빌어 말하게 하는 점에서, 아이돌 팬덤에서 팬아터로 활동했던 작가의 노련함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연인 사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흔히 조련이라 부르는 연인처럼 상대를 대하는 아이돌의 비즈니스적 행동에 팬들은 연애감정을 느끼고 자신을 연인의 위치에 두고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여팬이 직접적으로 자신을 연인 사이로 지칭하거나 상대를 섹슈얼하게 바라본다고 말해서는 안된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는 「남팬만화」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남돌과 남팬의 연애


제목의 '남팬'은 남자아이돌을 덕질하는 남자 팬을 일컫는 말로, 여성이 대다수인 남자아이돌 팬덤에서 소수인 남성 팬들을 따로 지칭한다. 이 작품이 퀴어물이 아닌 BL물의 문법을 취하고 있음이 명백한 부분은, 등장하는 거의 모든 남성 캐릭터가 게이(혹은 기타 남성퀴어)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게이 문화에 대한 언급이나 스스로를 게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남성 캐릭터 간에만 성적 긴장감을 느낀다. 성 소수자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내가 사랑한 사람이 남자였을 뿐입니다..'와 같은 90년도 한국 팬픽식 묘사가 여전하다. 물론 이러한 고전적인 프레임을 가져와 그린 작품이기 때문에 더욱 인기가 있다.


이 만화의 장르는 로맨스 드라마로, 남팬과 남돌의 연애감정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그들은 서로를 의식하고 연락을 주고받으며 같은 방에서 식사도 하고 술도 마시고 잠도 자지만, 실제로 여팬과 남돌이 이런 식의 관계를 맺고 또 그 사실이 팬덤에 알려질 때는 여팬은 인신공격과 협박과 스토킹에 시달리게 된다. 실제로 자신의 팬과 연애를 한 몇몇 아이돌들의 경우 여자 애인의 개인 SNS 계정 등의 사진이나 게시글 캡쳐본이 팬덤에 돌며 갖은 루머와 협박과 욕설을 듣곤 한다.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그룹의 다른 남자 아이돌의 열애설이나 일반인 여자친구의 SNS 계정이 파헤쳐지는 이야기들을 보며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라 다행이라고 생각하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그룹의 남자 아이돌이 여자친구가 있음이 알려졌을 때 탈덕 선언을 하거나 끝까지 부정하는 등 마음 아파하는 여성 팬들이 상당히 많다. 「남팬만화」의 달콤하고 가슴 저린 로맨스는 여성 팬들에게는 타자인 남성 아이돌과 남성 팬의 이야기, 즉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다고 느껴질 수 있는 다른(자기와 같은 여자가 아닌) 사람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거부감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이다. 만약 「남팬만화」가 남자 아이돌을 좋아하는 여성 팬의 이야기였다면 오히려 상투적인 로맨스가 되거나, 팬들의 이입을 막는 현실적인 장치로 인해 지금과 같은 인기를 끌기에는 어려웠을 것이다.



팬덤감성

「남팬만화」 18화 에서 보이는 영수의 독백 "그런데 용철아 난 그런 네가 좋았거든 혼자 울면서 전부 토해내도 끝까지 그렇게 견디는 사람. 한번도 슬퍼해 본 적 없는 사람처럼 웃어보이는거. 네가 연기하는 굿맨 그 자체가." 라는 부분에서는 전형적인 트위터의 아이돌 시bot(*아이돌의 사진을 계정의 프로필 사진으로 사용하며 불특정한 싯구의 일부를 업로드하여 마치 아이돌 본인 혹은 팬의 시처럼 보이게 함) 혹은 팬song(*유명인을 좋아하는 팬의 입장에 이입하여 들을 수 있는 곡들로, 팬들이 여러 가지 마음에 드는 곡들을 취합하여 올린다)에 가까운 감성을 보인다. 실제로는 전혀 알 수 없는 아이돌의 속내를 자신이 덕질로 얻어냈다고 생각하는 정보 값과 애정 그리고 자기 투사로 조합해 어떤 캐릭터나 바램을 읽어낸다. 일부 팬에게 아이돌은 그 자신과도 같이 느끼는 동시에, 애인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다. 「남팬만화」를 연재하는 작가 장진은 자신이 어떤 생태를 바탕으로 작품을 연재하고 있는지에 대해 명확하게 이해하고, 남돌의 팬들이 열광하는 포인트들을 섬세하게 포착하고 연출한다.


「남팬만화」 관련으로 참고할만한 SNS 계정 중 작가가 직접 운영중인(혹은 운영했던) SNS 계정들을 보자 첫번째로는 비정기로 실시간 연재되는 비공개 계정 @namfanlive 이 있다. 말하자면 기다무(기다리면 무료)가 아니면 비팔무(비공개계정을 팔로우하면 무료로 미리보기 제공)인 것이다. 두번째로는 장진 만화 알림 계정 @tkdgkdl_jj  으로 포스타입 업데이트 알림에 사용되는 계정(남팬만화 외 장진 작가의 만화 등의 업데이트 알림 )이 있으며, 세번째로는 작중 캐릭터들에 대한 공식 혹은 비공식 잡담 혹은 썰을 업로드하는 개인계정도 있다. 가장 독특한 성격의 계정인 굿맨월드(작중 주인공인 김영수의 작중 아이돌 그룹 파라맥스 덕질 계정명과 동일) @_GMworld_ 는 한동안 작중 가상 아이돌인 파라맥스의 앨범티저, 순위, 앨범표지, 앨범 곡 리스트 등을 공유하며 작품에 대한 몰입도를 높였다(이와 같은 방식은 마치 트위터에서 운영되고 있는 수많은 캐릭터 bot 계정의 운영방식과 닮아있다. 창작물의 등장인물을 재해석+확장하여 실제 그 캐릭터가 사용하는 SNS라는 컨셉으로 운영하는 성격이다.). 이후 작중 흐름에 따라 굿맨월드 계정은 비활성화 되었고, 2018년 10월 4일부터 재운영 되기 시작한 현재는 작가가 아닌 팬이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https://ask.fm/basunkim 애스크애프엠으로 질문이나 피드백등에 대해 답변하고 있기도 하다.)



위와 같은 특징들로 인해 「남팬만화」의 팬들은 작중 가상의 아이돌(파라맥스)을 덕질하는 팬이라는 롤플레잉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디시인사이드 마이너 갤러리를 개설하여 실제 아이돌 갤처럼 글을 올리고, 트위터에서는 「남팬만화」의 연재분이나 낙서 혹은 일러스트를 잘라 올리며 아이돌 덕질을 한다. 남팬만화의 릭터 제4회 인기투표는 무려 3,036명이 투표에 참여했고, 이는 포털이나 웹툰 사이트가 아닌 개인 연재작품으로는 놀라운 반응이라 볼 수 있다. 트위터에서 해시태그 #파라맥스 를 검색하면 파라맥스 앨범 티저, 지하철역 광고, 직찍 등의 이미지를 2차 창작하거나 재 업로드 하며 팬 만화의 아이돌 팬이 되는 롤플레잉 덕질을 즐기는 계정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독자들이 적극적으로 작중 세계관에 이입하고, 익숙한 방식으로 소비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디시인사이드 파라맥스 갤러리

http://gall.dcinside.com/mgallery/board/lists/?id=paramax



한계와 가능성


2014년 6월 30일 의 작가의 개인 에스크에프엠에 질답

https://ask.fm/basunkim/answers/113617951486



장진은 스토리 작가 출신인 탓인지 자신감이 부족하고 작품 연재로 수익을 얻고 있지 않기 때문에 미채색, 러프한 스케치를 즐겨 쓰는 등 포털 웹툰에 비해 퀄리티가 낮아 팬아트에 가까운 성격을 지니고 있다. 작가 본인도 SNS를 통해 그림 작가와 협업하는 방식에 지쳐있기 때문에, 「남팬만화」를 그러한 방식으로 연재하는 것은 고려하기 어렵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이와 같은 작화 스타일은 실제 SNS에서 실시간으로 업로드되는 팬아트들과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다. 최대한 아이돌에 관련된 새로운 발언이나 행동들을 빠르게 포착해 주목을 끄는 팬아트를 생산-소비하는 독자층을 정확히 분석하는 동시에 그들에게 익숙한 작화로 더욱 접근성을 높인 똑똑한 설정이다. 이 점을 고려한다고 해도, 아쉬움이 남는 것은 사실이다.


 비록 야오이의 외피를 입은 헤테로 로맨스물에 가깝지만, 꼭 다듬어져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장진은 팬덤의 팬아터와 같은 방식을 활용하여 독자를 타겟팅하고, 이들이 다채로운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봇과 SNS 계정을 운영할 수 있는 재능있는 작가다. 장진의 한계는 곧 팬덤 문화의 한계와 같다. 작가는 팬덤 문화에 거의 완벽하게 동화된 상태로, 팬아트로 수익을 내지 않는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오빠 팔아서 돈 벌면 안된다'고 말하는 국내 팬덤의 정서와도 관련이 깊다. 팬아트로 수익을 내는 것은 큰 죄악이며, 자필 혹은 에버노트 사과문을 작성하고 구구절절 환불과 사과와 온라인 인격의 말살(계정삭제)등으로 깊이 반성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장진은 그러한 분위기를 비판하면서도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의 가장 큰 장점인 팬덤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와 분석이 도리어 작가로서의 가능성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컷마다 녹아있는 세세한 감정선의 연출과 아이돌 팬덤에 대한 다년간의 관찰을 반영한 요소요소들이 돋보이는 「남팬만화」는 아이돌 팬덤 문화에 대해 아는 사람 또는 모르는 사람까지도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작품인 것이 분명하다. 단순히 팬아트 성격의 자유 연재 웹툰을 그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아이돌 팬덤문화 전체를 아우르는 작품을 그리는 웹툰 작가로 홀로서기에 성공하길 바란다.



*피드백을 참고해 굿맨월드 계정은 현재 팬계정으로 운영되고 있음을 명시하여 수정했습니다. (2018-11-08)


ⓒCherry™

*잡지빠순블로그에 게재된 글입니다. http://magppasn.tistory.com/9